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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은 LP / 2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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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15일 출시 변심에 의한 주문 취소는 되지 않으니 매우 신중히 검토후 주문 주시기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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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블
: YEJ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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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코드 : 8809009296177 |
출시일 : 2025/05/15 예약상품 |
장르
: 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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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
: 판매중 |
판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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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800 원 |
할인가
:
45,900 원
( 2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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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e. A
1. 행복한 마음
2. 좋아하는 것
3. 그 여자
4. 어느날이 였었나
5. 비가
Side. B
1. 당신을 처음 보았을때
2. 주여! 나는
3. 헤어질때
4. 꿈 ∙ 사랑 ∙ 인생!
5. 내가 좋아하는 날
1LP 33RPM 180g Black Vinyl
日本 東洋化成 Pressing
인서트, 스티커, 브로마이드 포함
국내 인쇄(Printed in Kore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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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엔딩송 <또 만나요>의 작곡자 오세은
국악을 블루그래스 기타주법에 접목하는 음악실험에 몰입했던 싱어송라이터 오세은은 1980년 이후 대중적 음악활동과는 거리를 두었다. 이미 고인이 되어버린 그를 기억하는 지금의 대중이 거의 없는 이유일 것이다. 한국에서 진지한 음악의 탐구는 천형일까? 대중이 선호하거나 유행하는 주류 음악이 아닌, 삐딱한 실험음악을 추구하는 뮤지션은 어김없이 무관심과 생활고라는 이중고를 각오해야 한다. 음악의 완성도보다 가수나 밴드의 인기가 언제나 평가의 잣대로 매섭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런 우리 대중가요계의 후진적 음악 환경은 뛰어난 뮤지션들을 고독한 은둔의 습지를 내몰아왔다.
1970년대 한국 포크의 전설로 회자되는 오세은에 대한 이해를 돕자면 그가 작곡해 히트했던 <또 만나요>를 반듯이 소환해야 되는 번거로움이 있다. 경쾌한 '빠빠빠' 후렴구가 중독적인 밴드 딕 패밀리의 빅히트 버전으로 인해 이 노래는 70년대부터 지금까지도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유흥업소와 상점들의 폐장을 알리는 '국민 엔딩송'으로 각광을 받아왔다. 또한 <또 만나요>는 어린이 바이엘 피아노 교본에 수록될 만큼 고전으로 평가받지만 정작 창작자는 2007년에 발표한 자신의 앨범 ‘THE BLUES' 이전까지는 발표조차 못했던 비운의 곡이다. 경쾌하게 편곡된 딕 패밀리 버전은 대중이 좋아할 요소가 많지만 오세은의 오리지널 버전은 언뜻 다른 곡으로 착각할 정도로 느릿하면서도 끈적거리는 블루스 버전이다.
어쿠스틱과 일렉트릭 사이에서 줄타기한 음악노선
'전설적인 70년대 포크 싱어송라이터'로 음반수집가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오세은은 사실 록밴드 출신이다. 그는 성균관대학교 재학 시절인 1966년부터 아이돌스, 플라워스, 영 바이블스, 라이더스, 메가톤스 등 수많은 밴드들을 거치며 기타 연주와 보컬을 맡아 음악내공을 쌓았다. 로커와 포크가수의 영역을 넘나들었던 독특한 이력의 그는 작곡과 가창 그리고 편곡과 연주까지 모든 음악과정을 스스로 해결했던 당시로서는 흔치 않은 멀티플 능력자였다. 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는 대학가를 중심으로 중고등학생들까지 통기타 열풍이 뜨거웠다. 록밴드 활동을 했던 오세은도 어쩔 수 없이 포크가수 대열에 합류했다.
오세은의 디스코그래피는 어쿠스틱과 일렉트릭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며 절묘한 줄타기를 했던 그의 다양한 음악활동을 증언한다. 1968년 대학 3학년 때부터 통기타 가수활동을 병행했던 그는 TBC TV의 아침프로 ‘모닝쇼’ 출연에 이어 1971년에는 명동 YWCA 청개구리 홀 무대에도 올랐다. 이 시절 CBS의 김진성 PD와 봉봉사중창단 출신으로 일간스포츠에서 기자로 활동했던 김유생과 친하게 어울리며 많은 도움을 받았다. 당시 오세은의 주 레퍼토리는 비틀즈와 사이먼& 가펑클의 팝송과 자신의 창작곡이었다. 당시 매니저 역할까지 맡았던 김유생 기자가 오세은의 솔로 독집 제작을 주선했다. 대학재학시절에 작곡한 곡을 모아 1972년 장충동 녹음실에서 MBC 오케스트라의 세션으로 5일간 녹음하며 데뷔를 준비했다.
학생층의 인기를 가져다 준 솔로 데뷔앨범
솔로 데뷔앨범인 ‘오세은 스테레오 선곡집’은 애잔하면서 우수에 젖은 편안한 멜로디의 포크앨범이었다. 그의 1집은 사전검열에서 사회성 강한 곡들이 퇴짜를 맞아 상당부분의 가사를 개작하는 아픔을 겪었다. 또한 외부음악인에 맡겨져 이뤄진 원치 않은 편곡으로 인해 정작 본인은 심플한 통기타 사운드에 대한 진한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타이틀곡 <친구야> 등 여러 곡이 제법 반응을 얻으면서 오세은은 MBC, TBC, 동아방송, CBS등 모든 방송에 출연을 하며 주목받았다. 특히 중고등학교 여학생들의 반응이 좋아 여학생, 학원 등 당시 청소년 대상 월간 잡지에 사진모델로도 활동했다. 음반발표 후 서울 명동의 OB's캐빈 라이브 클럽에서 포크가수 이연실과의 조인트 콘서트는 언론의 관심까지 끌었다.
국내 최초로 블루그래스 기타 주법 시도
1집의 잔잔한 성공에 동력을 얻어 제작한 오세은의 정규 2집 ‘노래모음’은 1973년에 발매되었다. 이 앨범은 희귀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오세은의 디스코그라피에서도 실물을 직접 본 사람이 드물 정도로 매우 희귀한 음반으로 분류된다. 앨범 커버 디자인부터가 범상치 않다. 당시 유행했던 가수의 얼굴이 크게 장식된 평범한 가요앨범 재킷과는 차별되는 황량한 분위기를 연출한 배경 속에서 외국 잡지를 보고 있는 오세은의 사진으로 장식된 커버 이미지는 그 자체로 블루지하다. 팝송 번안 곡들이 세상을 지배했던 당시, 전작에 이어 오세은의 창작곡들로만 구성된 앨범이라는 점에서 이 앨범의 존재가치가 매우 무겁다.
앞서 언급했지만 오세은은 담백하고 심플한 포크송으로 구성된 1집에서 빈약한 사운드로 완성된 편곡에 음악적 갈증을 느꼈다. 그래서 2집 녹음을 위해 친하게 지냈던 음악친구들을 소집해 5인조 밴드 세션을 결성했다. 심플한 사운드의 포크송보다 자신이 지향했던 블루스 록 사운드를 시도하기 위함이었다. 가수나 작곡가보다 기타 연주자로서 더욱 뛰어났던 오세은은 김수철보다 한참 먼저 '기타 산조'를 실험했던 선구적인 뮤지션이었다. 그는 이 앨범에서 국내 최초로 블루그래스 기타 주법을 선보였던 독보적인 기타리스트였다. 실제로 그는 이 앨범 발표 후 10년이 지난 1983년에 블루그래스 주법 교본까지 출간했었다.
국내 최초로 블루그래스 주법을 시도한 창작앨범
총 10곡의 창작곡이 수록된 앨범의 문은 경쾌하고 친숙한 리듬으로 진행되는 타이틀곡 <행복한 마음>이 연다. 어쿠스틱과 일렉트릭 기타 사운드 어우러진 연주는 당시 록과 포크를 넘나들었던 오세은의 음악적 스탠스를 반영한다. 이어지는 <좋아하는 것>은 이 앨범이 국내 최초로 블루그래스 주법을 시도한 귀한 창작앨범임을 증명하는 백미다. 일단 블루지한 일렉트릭 기타연주로 시작되는 인트로부터 매력적이다. 느릿하게 진행되지만 중간 중간 파고드는 기타 리프와 플루트 연주는 프로그레시브한 분위기까지 연출한다. 어쿠스틱 솔로 기타에서 밴드 셋으로 연주가 확장되는 <그여자>는 떠난 여자를 그리워하는 오세은의 애절한 보컬이 쓸쓸한 정서를 안겨준다. 색소폰이 등장하는 <어느날이 였었나>에 이어 작렬하는 드럼 오프닝과 전자 오르간 그리고 흐느끼는 오세은의 오열창법이 인상적인 <비가>는 느릿하면서도 슬픈 70년대식 그룹사운드의 전형을 들려준다.
앨범에서 가장 롱 버전인 <당신을 처음 보았을 때>는 블루지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2면 첫 곡을 장식한다. 어쿠스틱 기타의 스트로크 주법으로 경쾌하게 시작되는 <주여! 나는>는 지독한 불교신자였던 오세은의 이색 찬송가에 가깝다. 감정의 과잉 표출이 거의 없는 창법을 구사했던 오세은의 ‘주여’를 애절하게 외치는 샤우팅 창법을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곡이다. 어쿠스틱 기타와 오세은의 목소리가 중심인 <헤어질때>는 심플한 포크 질감을 전달한다. 어쿠스틱 기타 오프닝이 연속되는 <꿈.사랑.인생!>에 이어 <내가 좋아하는 날>은 화려한 밴드 세션으로 진행되는 이 곡에는 오세은의 희귀한 열창이 담겨 있는 엔딩곡이다.
검열시대의 힘겨운 기사작업
어쿠스틱 사운드를 지향했던 전작에서 느꼈던 사운드의 갈증을 2집에서는 어느 정도 해갈했지만, 3집 이후에도 오세은은 늘 노랫말에 대한 갈증이 극심했다. 포크와 록 장르 어느 곡에서도 그는 당시 자신이 품었던 생각을 가사에 온전하게 담아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가사 중에 ‘착한 사람’ 등 유아적 수준의 어색한 단어 등장은 검열에 대한 그의 강박관념을 보여주는 결과물이다. 생전의 그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가사작업에 대해 "70년대는 가사에 단어 하나를 쓰면 무조건 검열에 걸리는 단어인지 아닌지를 먼저 생각해야 되었다. 암울한 시절이었다. 일단 검열을 통과해야 음반을 정식으로 발표하니 방법이 없었다. 곡을 쓸 때마다 작업에 집중하기 보단 그런 외적인 요인에 신경을 쓰는 것이 익숙해지다 보니 완성도에서 한계가 느껴졌다. 그래서 가사가 잘 써지질 않아 답답했었다."고 회고했다.
오세은 LP의 최초 재발매
비록 일반대중에게는 오세은의 네임 브랜드 파워가 미미하지만 음반수집가들 사이에서는 온도가 확연하게 달라진다. 현재 오세은의 모든 LP들은 희귀가요 LP를 상징하는 존재가치를 지니고 있다. 1972년 어쿠스틱한 1집과 블루지한 록을 구사한 1973년의 2집 그리고 1974년 발표한 금지곡 <고아>와 롱 버전 <당신>이 수록된 3집은 전작들의 두 가지 경향을 '종합선물세트'로 집약한 명반으로 평가받는다. 오세은의 LP들이 수 백 만원을 호가하는 고가의 수집 아이템으로 대접받는 것은 잔존 수량이 극소수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꾸밈없는 오세은의 가창력은 어눌하게 느껴져 당황할 청자도 있겠지만, 반복해서 듣다보면 헤어나기 힘든 중독성을 발휘하는 치명적 매력이 있다. 고단한 음악인생을 걸었던 오세은의 삶의 여정은 한국 전통음악인 국악과 서양 음악의 뿌리인 블루그래스 기타주법에 대한 탐구라는 치열하고 고독한 여행이었다. 반세기만에 재발매된 이 앨범은 그 여정의 본격 출발을 알렸지만 대중과 소통하지 못했던 비운의 앨범이기에 지금의 대중과 어떤 색채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무려 반세기만에 오리지널 LP버전으로 제작된 이 앨범은 희귀 가요LP의 상징적 존재인 오세은 LP의 최초 재발매란 점에서 의미가 크다. /최규성 한국대중가요연구소 대표. 대중음악자료 수집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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