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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reat Members of Cuban Music V.A. / The Five

레이블 : Splash Music
출시일 : 2002/02
장르 : 월드뮤직 편집앨범
상태 : 품절
판매가 : 0
할인가 : 0 원 (0)
수량 :
CD 1
01 ) Chan Chan (Eliades Ochoa/ Compay Segundo)
02 ) El Cuarto De Tula (Eliades Ochoa/ Compay Segundo)
03 ) Entre Las Flores (Eliades Ochoa)
04 ) Descripcion De Un Sueno (Eliades Ochoa)
05 ) Bajo Un Palmar (Omara Portuondo)
06 ) Campanitas De Cristal (Omara Portuondo)
07 ) Quizas, Quizas, Quizas (Omara Portuondo)
08 ) Veinte Anos (Omara Portuondo)
09 ) El Amor De Mi Bohio (Omara Portuondo)
10 ) Chicharrones Con Tostones (Compay Segundo)
11 ) De Jatibonico A Bolondron (Compay Segundo)
12 ) Como La Piel De Canela (Ibrahim Ferrer)
13 ) El Botellero (Ibrahim Ferrer)
14 ) El Dandy (Ibrahim Ferrer)
15 ) El Mecanico (Ibrahim Ferrer)
16 ) Descarga Papines (Ruben Gonzalez)
17 ) Nueva Guajira (Ruben Gonzalez)

CD 2
01 ) El Calderito (Compay Segundo)
02 ) Guananey (Compay Segundo)
03 ) Juramento (Compay Segundo)
04 ) A La Casa De La Trova (Eliades Ochoa)
05 ) Ahora Me Da Pena (Eliades Ochoa)
06 ) Al Valven De Mi Carreta (Eliades Ochoa)
07 ) Eso No Lo He Dicho Yo (Omara Portuondo)
08 ) Gracias A La Vida (Omara Portuondo)
09 ) I nterludio (Omara Portuondo)
10 ) La Ultima Noche (Omara Portuondo)
11 ) Me Acostumbre (Omara Portuondo)
12 ) Ambrosio (Ruben Gonzalez)
13 ) Ciudad Oscura (Ruben Gonzalez)
14 ) El Planatal De Bartolo (Ibrahim Ferrer)
15 ) Mi Oriente (Ibrahim Ferrer)
16 ) Habana Camilo (Ibrahim Ferrer)

CD 3
01 ) Toda Una Vida (Omara Portuondo)
02 ) Verdad Amarga (Omara Portuondo)
03 ) Y Mucho Mas (Omara Portuondo)
04 ) Y Solo Tu Y Yo (Omara Portuondo)
05 ) Allidonde Tu Sabes (Eliades Ochoa)
06 ) Alma De Mujer (Eliades Ochoa)
07 ) Estoy Hecho Tierra (Eliades Ochoa)
08 ) La Ternera (Compay Segundo)
09 ) La Trova (Compay Segundo)
10 ) Maria En La Playa (Compay Segundo)
11 ) Fomento (Ibrahim Ferrer)
12 ) Monte Adentro (Ibrahim Ferrer)
13 ) Nena Linda (Ibrahim Ferrer)
14 ) De Que Te Quejas (Ruben Gonzalez)
15 ) Sancho (Ruben Gonzalez)
16 ) Sentimiento (Ruben Gonzalez)

CD 4
01 ) Pena (Compay Segundo)
02 ) Porbe Corazon (Compay Segundo)
03 ) Quien Te Bautizo (Compay Segundo)
04 ) Saludo Compay (Compay Segundo)
05 ) Cancion De Un Festival (Omara Portuondo)
06 ) No Te Quejes (Omara Portuondo)
07 ) Nosotros (Omara Portuondo)
08 ) Reclamo Mistico (Omara Portuondo)
09 ) Calabaza Con Puerco (Ibrahim Ferrer)
10 ) Pero Que Suegro (Ibrahim Ferrer)
11 ) Rossana (Ibrahim Ferrer)
12 ) La Culebra (Eliades Ochoa)
13 ) Las Mujeres De Mayari (Eliades Ochoa)
14 ) Fantoche (Ruben Gonzalez)
15 ) Moby Dick (Ruben Gonzalez)
16 ) Noneto (Ruben Gonzalez)

CD 5
01 ) Siboney (Omara Portuondo)
02 ) Y Tal Vez (Omara Portuondo)
03 ) Llego El Cuarteto Patria (Eliades Ochoa0
04 ) No Quiero Celos Contigo (Eliades Ochoa)
05 ) Ojos Malignos (Eliades Ochoa)
06 ) Oui Parle Francais (Compay Segundo)
07 ) Se Seco El Arroyito (Compay Segundo)
08 ) Te Apartas De Mi (Compay Segundo)
09 ) Ahora Me Da Pena (Compay Segundo)
10 ) Casabe Y Macho (Compay Segundo)
11 ) Todavia Me Queda Voz (Ibrahim Ferrer)
12 ) Un Granito De Arena (Ibrahim Ferrer)
13 ) Ya Soy Feliz (Ibrahim Ferrer)
14 ) Serenata Para Los Monos (Ruben Gonzalez)
15 ) Soplete (Ruben Gonzalez)
16 ) Zamcudo (Ruben Gonzalez)
17 ) Que Infelicidad (Ruben Gonzalez)  
오늘날 전세계 대중음악의 한 근간을 이루는 쿠바의 음악은 전세계 음악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다.
우리나라도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과 사운드 트랙으로 인해 쿠바의 음악 열풍에 안전지대는 아니었다.
국내에서도 제3세계의 음악인 부에나 비스타 사운드 트랙이 1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한 것이 단적인 예라 하겠다 이미 사운드 트랙이 전 세계에서 1000만장이상이 팔린 것은 사상 유래 없는 쿠바음악의 열풍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러한 쿠바의 음악의 열풍을 더욱더 자세히 접 할 수 있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결정체가 담긴 음반이’The Great Members of Cuban Music Five’ 재 출시된다.
쿠바음악계의 살아있는 전설적 멤버 5인 (콤파이 세군도(1907년생, 기타/보컬), 이브라힘 페레(1927년생, 보컬), 루벤 곤잘레스(1919년생, 피아노), 오마라 포르투온도(1930년생, 보컬), 엘리아데스 오초아(1946년생, 기타)) 의 베스트로 구성된 총 82곡의 5 FOR 1 앨범인 이 음반은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사운드 트랙이 녹음되었고 주요 멤버 5인이 속해있던 쿠바의 국영 레이블 EGREM과 우리나라가 97.11월 한.쿠바 상의간 협력의정서를 체결한 이후 국내 음반업계 최초로 라이센스계약을 통해 제작 출시 되는 음반이다.(EGREM은 쿠바의 국영레이블로 쿠바의 전통음악 Rumba, chachacha, guaracha, son, salsa, bolero를 전세계에 알리고자 30여년전에 설립된 회사).

이 음반의 타이틀은 전설적 멤버5인을 상징하듯 ‘ Five’이다.
이 음반은 멤버들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곡들이 대거 수록되어 있는데, 부에나 비스타 사운드 트랙 이전 그들의 리코딩 즉 60년도 리코딩에서 97년 리코딩에 이르기 까지 멤버들의 한창시기에 리코딩된 음원들이다.
국내에서 너무나도 유명한 CHAN CHAN ,스무살 등 이미 발매된 O.S.T의 주요 수록 곡 3곡 뿐만 아니라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거장 5인의 연륜이 서린 주옥과 같은 명곡들 총 82곡이 수록되었다.(꼼빠이 세군도의 17곡, 오마라의 20곡 ,엘리아데스의 15곡, 이브라힘의 16곡,루벤 의 14곡)
특히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꼼빠이의 Son곡인 Chan Chan과 엘리아데스와 꼼빠이의 El Cuarto De Tula(툴라의 방) 오마라의 Veinte anos(스무살)은 사운드 트랙을 위해 편곡되기 이전 버전이라 더욱더 쿠바적이라 느낌이 다르다.
아흔 네살이 넘은 거장 꼼빠이와 엘리아데스가 같이한 A LA CASA DE LA TROVA(트로바의 집), AHORA ME DA PENA(지금은 슬퍼요), ALLI DONDE TU SABES(당신이 아는 그곳에), CHAN CHAN, DESCRIPCION DE UN SUENO(꿈의 묘사), EL CUARTO DE TULA(툴라의 방), NO QUIERO CELOS CONTIGO(당신의 질투는 싫어요)와 같은 곡들은 꼼빠이가 발명한 TRES와 기타의 중간형태인 ARMINICO라는 악기의 연주를 들을 수 있어 더욱 좋다.
쿠바의 디바로 알려져 있는 오마라가 부른 수록곡 QUIZAS,QUIZAS,QUIZAS(아마도)는 라틴 음악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트랙이다. 냇 킹 콜, 트리오 로스 판초스 등의 작품으로 알려진 이곡을 서정성과 아름다움을 살리는 창법으로 불러 매력적이다.
쿠바의 전통음악 DANSON을 대중화 시킨 거장 Electo Rosell (chepin)이 불러 쿠바에서는 너무나도 유명한 곡 과라차 El platanal de Bartolo를 이브라힘 페레가 함께한 버전이 수록되어 있어 이 음반은 더욱더 값지다.
이 음반에서 흥미로운 것은 이제 루벤 곤잘레즈외 8명의 연주자들이 연주한 AMBROSIO, CIUDAD OSCURA(어두운 도시), DE QUE TE QUEJAS(무얼 불평하나요), SERENATA PARA LOS MONOS(원숭이를 위한 세레나데)등의 곡이 1964년에 Cuban radio & TV에서 리코딩한곡들로서 옛날 음악동료 Robert Valdes Arnau, Pucho Escalante와의 추억을 기념하기 위해 99년 재발매 한 것이다.

이음반이 다른 음반과는 달리 수십년에 걸친 쿠바의 소리를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언어의 다름 때문에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멤버들의 음악을 잘 이해하지 못했던 팬들의 갈증을 조금이나마 풀어주기 위해 약간의 가사와 그에 대한 번역을 첨가하였다는 것이다.

Buena Vista Social Club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 쿠바. 우리에게는 시가와 럼주, 야구 그리고 체 게바라를 연상시키는 나라. 그러나 이들 말고도 쿠바가 자랑하는 또 다른 보물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Buena Vista Social Club)’이다.
'환영받는 사교 클럽'이라는 뜻을 지닌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은 쿠바 음악계의 백전노장들로 구성된 '아프로-쿠반 재즈(Afro-Cuban Jazz)'그룹. 1997년에 낸 동명의 음반으로 순식간에 세계적으로 600만장에 가까운 판매고를 올렸으며 그래미상을 수상함으로써 세계를 카리브해의 열풍으로 몰아넣었다. 미국, 유럽에서 열렸던 이들의 콘서트는 연이은 매진을 기록했으며, 2000년 호주 올림픽 아트 페스티발의 개막무대를 장식했고, 지난 8월 일본 투어에서는 발매 30분만에 티켓이 동이 나 버렸다. 이름 뜻 그대로 어디에서나 환영받게 된 '부에나 비스타’는 이제 세계 음악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음악이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 쿠바

쿠바는 그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일찍이 아메리카 대륙에 들어오는 유럽세력의 관문이 되었으며 백인, 혼혈, 흑인 등의 여러 인종이 조화롭게 융화를 이루고 있는 나라이다. 쿠바의 문화는 스페인과 아프리카 그리고 원주민의 전통이 혼합된 형태인데, 그 바탕에는 수세기 동안 이어진 스페인의 식민통치와 그들이 데리고 온 수많은 아프리카의 노예들이 존재하고 있다. 백인들은 이들 흑인 노예들을 사탕수수와 담배 재배에 동원시킴으로써 막대한 이윤을 거두었다.
다양한 인종이 섞이면서 발생한 이질적인 여러 문화의 결합과 충돌은 새로운 삶의 양식과 오락거리의 등장을 낳았다. 그 중에서도 쿠바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결과물이 바로 '아프로-쿠반 뮤직 (Afro-Cuban Music)’이라고 일컬어지는 쿠바 특유의 음악이다. 콩가와 봉고, 클레이브와 같은 아프리카의 전통 타악기들과 플루트, 바이올린, 트럼펫, 기타 등과 같은 유럽 악기들이 만들어내는 리듬과 선율은 서로 어우러져 쿠바 음악에 독특한 요소를 가미해 주었다. 그리하여 탄생한 것이 '손(son)'이라는 음악스타일이며 이것이 쿠바 음악의 뿌리를 이루게 되었다. 쿠바 음악은 제3세계 음악으로서 낯설게 느껴질지 모르나 '룸바(rumba)', '볼레로(bolero)', '맘보(mambo)', '차차차(cha-cha-cha)', '살사(salsa)' 등과 같이 오늘날 팝계와 가요계에서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은 모두 쿠바의 거리에서 생겨난 것들이다. 흔히 '쿠바인들의 피 속에는 음악이 흐른다'고 말하여지듯, 그들만의 농도 짙은 색깔과 문화적인 다양성이 가장 아름답게 반영된 쿠바의 음악은 쿠바가 가진 가장 풍부한 자산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1980년대 몇몇 실험적인 대중음악가들이 비영어권 국가의 민속음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이후 점차 주목받기 시작한 쿠바의 음악은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성공으로 인해 변방의 음악에서 세계 중심의 음악이 되었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탄생

원래 '부에나 비스타’클럽은 1930-40년대 전성기를 누렸던 쿠바의 수도 아바나 동부의 고급 사교장이었다. 이 시기, 미국을 비롯한 서구 각국의 자본이 고수익을 낳는 사탕수수 재배와 고급 시가 생산을 위해 몰려들면서 카바레, 클럽과 같은 사교장들이 번성하기 시작했고 쿠바 최고의 뮤지션들이 이 곳에 모여 음악을 연주하였다. 그러나 쿠바 혁명이 일어나자'부에나'를 비롯한 여러 클럽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간 백인 손님들의 공백을 메우지 못하고 결국 문을 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 곳에서 연주를 하던 연주자들은 갈 곳을 잃고 뿔뿔이 흩어져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렸고, 쿠바 음악의 황금기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그러던 1996년, 기타리스트이자 월드뮤직의 대부로 불리우는 프로듀서 라이 쿠더(Ry Cooder)는 런던에 있는 음반사 '월드 서킷'의 사장 닉 골드(Nick Gold)와 함께 아프리카와 쿠바 기타리스트들의 합동연주를 기록하고자 1996년 쿠바로 향하였다. 그러나 함께 오기로 했던 아프리카 연주자들이 비자문제로 인해 파리에 주저앉게 되자, 이 두 사람은 연주자를 모두 현지에서 조달하는 것으로 계획을 바꾸었다. 이리저리 수소문하여 한 명 한 명 연주자를 끌어 모으던 이들은 오디션을 하면서 평균연령 60세가 넘는 노인 연주자들이 들려주는 신들린 노래와 연주에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1950년대에 지어진 하바나의 허름한 에그램 스튜디오에서 이루어진 이들의 녹음은 편집 없이 라이브로 진행되었고 불과 6일만에 끝이 났다. 앨범은 영화스러웠던 옛 클럽의 이름을 따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라 명명되었으며 '월드서킷/논서치(World Circuit/Nonesuch)’레이블을 통해 출시되었다. 맘보, 볼레로, 단손 등과 같은 쿠바음악의 본류와 함께 아프로-쿠반 재즈와 라틴 재즈의 진수를 보여준 이 음반은 발매와 동시에 클래식과 팝, 재즈계로부터 열렬한 환호와 찬사를 받았다. 그 후 콤파이 세군도(1907년생, 기타/보컬), 이브라힘 페레(1927년생, 보컬), 루벤 곤잘레스(1919년생, 피아노), 오마라 포르투온도(1930년생, 보컬), 엘리아데스 오초아(1946년생, 기타) 등 쿠바음악의 노장들로 구성된 이 특별한 밴드는 빌보드 차트와 월드뮤직 차트를 강타하며, 1997년 그래미상에서 베스트 트로피컬 라틴 퍼포먼스 부문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와 '파리 텍사스'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독일의 명감독 빔 벤더스(Wim Wenders)는 오랜 친구였던 라이 쿠더의 소개로 동명의 다큐멘터리 필름을 통해 이들의 삶과 음악을 조명함으로써 2000년도 아카데미상에 노미네이트되었다.

Viva La Musica Cubana! ? Time

영원히 묻혀버리는 듯 했던 쿠바음악 황금기의 전설적인 음악과 연주는 이렇게 한 장의 음반과 한 편의 영화로 인해 다시 되살아나게 되었다. 70세를 훌쩍 넘긴 '부에나 비스타'의 뮤지션들은 모두가 쿠바음악의 산 증인들이나 다름없다. '손'이 아닌 '혼'으로 연주하는 비르투오조 피아니스트 루벤 곤잘레스(1919년생), 쿠바의 '냇 킹 콜'과 '에디뜨 피아프'로 불리우는 보컬리스트 이브라힘 페레(1927년생)와 오마라 포르투온도(1930년생).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깊은 이해를 공유하고 있는 이들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스스로 즐기기 위해서 음악을 한다. 이러한 그들의 음악 속에는 식민지배, 혁명, 독재와 경제적 제재 등으로 얼룩진 순탄치 않은 역사, 그러한 고난 속에서도 순수함을 잃지 않은 쿠바사람들의 낙천적인 모습이 녹아들어 있다. 카리브해를 닮은 듯 느릿하고 유장한 라틴리듬, 삶의 애환을 묵묵히 담아내는 서정적인 멜로디, 감미롭지만 애수가 깃든 보컬...음악을 삶이자 동시에 신앙처럼 여기면서 살아왔기에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어 들려주는 이들의 음악은 헤아릴 수 없이 깊고 그윽한 감동을 준다. 그리고 2001년 2월 이들은 미수교국인 한국에 순수한 열정과 경이로운 연륜으로 영혼을 울리는 음악을 선사하기도 했다.

Buena Vista Social Club 멤버 소개

이브라힘 페레 Ibrahim Ferrer : 1927년생, 보컬리스트

72세에 첫 데뷔 앨범 [Buena Vista Social Club presents Ibrahim Ferrer]를 발표하고, 73세에 라틴 그래미상 최우수 신인 아티스트상을 수상한이브라힘 페레는 언제나 부드럽고 겸손한 태도로 인해 ‘뮤지션 중의 뮤지션’이라 여겨진다. 손(son)과 볼레로(bolero)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평가받는 이브라힘은 쿠바 안팎에서 어느 정도의 명성을 누렸던 '부에나 비스타'의 다른 뮤지션들과는 달리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가 '부에나'에 의해 발굴되었으며, 이제는 인간문화재급의 아티스트가 되었다.
이브라힘은 1927년 산티아고의 한 사교 댄스 클럽에서 태어났다. 12세에 어머니를 잃은 그는 어려서부터 먹고살기 위해 거리에서 노래를 해야 했다. 1941년 산티아고의 한 악단에 들어가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노래를 부르면서 생계를 유지하던 그는 1950년 파초 알롱소(Pacho Alonso)가 이끄는 밴드에서 리드 보컬리스트로 활동하면서 전업 뮤지션이 되었으며 쿠바음악의 전설적인 존재인 '오르케스타 데 차핀(Orquesta de Chapin)'과 '베니 모레(Benny More)'의 밴드에서 객원주자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1959년 알롱소의 밴드는 '로스 보쿠코스(Los Bocucos)'라고 이름을 바꿔 하바나로 진출하였으며, 커피원두를 분쇄하는 소리에 기원을 둔 필론(pilon) 리듬을 개척하면서 점차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이브라힘은 이들과 20년 이상을 함께 활동하며 손(son)과 구아라차(guaracha) 그리고 빠른 템포의 곡들을 불러 인기를 누렸지만, 자신의 솔로 앨범 녹음을 하기까지는 40여 년이나 기다려야 했다.
하루 하루의 연주로는 생활을 지탱하기 힘든 쿠바의 다른 뮤지션들처럼 이브라힘도 은퇴한 것이나 다름없이 하바나 구시가지에 위치한 허름한 아파트에서 소량의 연금으로 생활을 지탱하고 있었으며, 부족한 부분은 구두를 닦는 것으로 꾸려나가고 있었다. 1996년 라이 쿠더와 함께 '부에나 비스타'의 앨범작업을 추진하면서 지나간 시절의 볼레로 가수를 찾고있던 프로듀서 후안 마르코스 드 곤잘레스(Juan de Marcos Gonzalez)는 마침 하바나의 거리를 한가로이 걷고 있던 이브라힘을 발견했다. 그리하며 이브라힘은 '부에나 비스타' 앨범의 '도스 가르데니아스(Dos Gardenias)'를 통해서 진정한 볼레로 가수로서의 재능을 활짝 펼치게 되었다.
‘나는 언제나 나 자신을 채찍질하여 왔지요. 그리고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젊었을 때 나는 나의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 세계를 여행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1962년에 유럽에 갔었던 것이 유일한 기회였습니다. 쿠바 미사일 위기가 터졌을 때 나는 파리와 동유럽에서 파초 알롱소의 밴드와 함께 연주하다가 발이 묶였죠. 모든 것들이 해결되고 나서야 겨우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 후 35년 동안은 아무 일도 없었어요. 지금 나는 삶에 대한 의욕이 넘칩니다. 나는 지금 노인의 몸으로 청년 시절에 꾸었던 꿈속을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루벤 곤잘레스 Ruben Gonzalez : 1919년생, 피아니스트

루벤 곤잘레스는 클래식 피아니스트나 의사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대신 반세기가 넘는 음악생활을 통해 독창적인 피아노 소리를 확립한 그는 아프로-쿠반 스타일 피아노 연주의 개척자로서 쿠바 음악계의 전설적인 존재가 되었다.
1919년 산타 클라라에서 태어난 루벤은 어렸을 때부터 탁월한 음악적 재능을 보여 15세의 나이에 시엔푸에고(Cienfuego) 컨서바토리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였다. 그 후 그는 낮에는 의사로 일하고 밤에는 음악을 하려는 계획으로 의대에 진학하였으나 너무나 강렬한 쿠바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결국 학교를 그만두고 하바나로 가서 전업 뮤지션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듣고있는 모든 쿠바 음악의 연원을 찾을 수 있는 음악의 황금기였던 1940년대, 이 시기에 걸쳐 쿠바음악에 혁명을 일으켰던 천재 음악가 아르세니오 로드리게즈(Arsenio Rodriguez)는 젊은 피아니스트 루벤의 연주를 우연히 듣고 감탄하여 함께 연주할 것을 제의하였다. 아르세니오는 많은 조언을 통해 루벤의 연주스타일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그는 위대한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쿠바음악의 싱코페이션(syncopation)을 터득하는 동시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연주를 해야한다고 말했다. 또한 다른 연주자들이 무엇을 하건 상관하지 말고 누가 듣더라도 루벤 곤잘레스의 음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자기 자신의 음악을 연주하라고 충고하였으며, 루벤은 그 가르침을 충실히 따라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확립해갔다.
그리하여 루벤은 이미 40-50대에 비르투오조 피아니스트로 평가받는 루이즈 릴리 마르티네즈(Luis 'Lili' Martinez), 페루친(Peruchin)과 함께 트리오를 구성하여 활동하면서 미국 재즈의 자유로운 즉흥연주와 아프리카 리듬을 결합시킨 맘보(mambo)를 발전시킴으로서 쿠바음악의 미래를 형성해가기 시작하였다. 그 후 탱고 뮤지션들과 함께 파나마와 남미를 순회하다가 하바나로 돌아와 '트로피카나'와 같은 클럽에서 연주를 계속하던 루벤은 1960년대 초 차차차(cha-cha-cha)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는 엔리끄 요린(Enrique Jorrin)을 만나 25년 동안 함께 활동했으며, 그가 죽은 80년대 중반 은퇴하였다.
그 후 하바나에서 단조로운 생활을 하고 있던 그는 습기에 벌레까지 먹은 피아노를 집에서 치워버린 관계로 가끔 피아노를 치러 에그램 스튜디오에 들르곤 했다. 마침 그 곳에서는 ‘부에나’의 음반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는데, 라이 쿠더와 프로듀서들은 루벤이 매우 특별한 피아니스트임을 한 눈에 알아보았다. 관절염을 앓으며 몇 년 동안 피아노도 없이 지냈던 루벤의 다시 되살아난 터치와 테크닉은 놀라운 경지였고, 라이 쿠더는 ‘내 일생동안 들어본 중에서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라며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이들에게 이끌려 50년이 넘게 뮤지션으로 활동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가지고 있지 않았던 첫 솔로 앨범 [[Introducing Ruben Gonzalez]]와 [[Buena Vista Social Club]] 앨범을 연이어 녹음하게 된 루벤은, 매일 아침 제일 먼저 나와서 스튜디오 문이 열리길 기다렸고, 자신이 좋아하는 곡과 연주자들을 손수 골랐다. 그 결과 쿠바 음악의 모든 형식과 리듬이 모여 놀랍도록 생생한 사운드가 탄생했으며, 77세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활기차고 역동적인 연주는 평론가들의 극찬을 얻음으로서 루벤을 위대한 피아니스트의 반열에 올라서게 하였다. 세계 각국에서 연주하는 지금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 여기는 루벤은 여생의 매일 매일을 연주하며 보낼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오마라 포르투온도 Omara Portuondo : 1930년생, 보컬리스트

'부에나 비스타'의 유일한 여성 멤버인 오마라 포르투온도는 쿠바 음악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뮤지션으로, 쿠바섬 전체에서 가장 뛰어난 볼레로 가수로 꼽힌다. 오마라는 50여 년이 넘게 프로 뮤지션 생활을 하며 쿠바음악을 세계에 알리는데 앞장서 왔지만, 역시 이브라힘 페레와 마찬가지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음반이 1997년 그래미상을 수상한 연후에야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오마라의 가족사를 살펴보면 마치 신대륙 개척사의 무용담을 듣는 듯 하다. 부유한 스페인계 집안 태생인 오마라의 어머니는 같은 계층의 사람과 결혼하는 대신에 흑인이자 쿠바의 국가대표 야구선수였던 그녀의 아버지와 사랑에 빠져 도망을 쳤다. 당시 쿠바에서 흑백간의 결혼은 인정받지 못할 일이었다. 그러나 가정은 평화와 화합의 장소였고 여느 쿠바 집들처럼 음악이 넘쳐흘렀다. 가난해서 축음기조차도 없었지만 오마라의 부모는 언제나 함께 노래를 부르곤 했다. 이것이 오마라에게는 음악레슨이 되어 주었으며 지금의 주요한 레퍼토리를 형성하게 하였다. 오마라의 부모가 자주 불렀던 '라 바야메사(La Bayamesa)'와 같은 곡은 콤파이 세군도의 연주로 [[부에나…]] 음반에 담겨있기도 하다.
오마라는 언니와 함께 하바나의 전설적인 클럽인 '트로피카나'에서 무용수로 활동을 시작해서 주말마다 아메리칸 재즈 스탠더드 곡들을 노래하였다. 이 당시 오마라와함께연주하였던 뮤지션들의 연주스타일 - 아메리칸 재즈의 영향을 받은 쿠바풍의 보사노바는 필링(스페인어로 filing)이라 불리우는 것으로 오마라는 곧 '필링의 피앙세'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 후 오마라는 여성 보컬 콰르텟인 '쿠아르테토 라스 다이다(Cuarteto Las D’Aida)'를 조직하여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냇 킹 콜, 에디뜨 피아프와 함께 공연하는 기회를 가지기도 했다. 1959년 오마라는 아메리칸 재즈와 쿠바음악에 두 분야에 걸쳐 모험적인 시도를 한 솔로 데뷔 앨범인 [[마지아 네그라(Magia Negra)]]를 냈으며 동료들과 함께 미국 마이애미로 가서 활동하다 쿠바가 미사일 위기로 인해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되어 고립되기 시작할 무렵, 같이 활동하던 언니를 미국에 남겨두고 서둘러 쿠바로 돌아왔다.
혁명 후 몇 년 동안은 카스트로가 사회주의적 이상향으로서 추구한 서방세계와의 단절로 인해 쿠바역사에 있어서 매우 어려웠던 시기였다. 음악에 있어서도 많은 뮤지션들이 망명을 해버려 채워지기 힘든 간격이 존재하고 있었지만, 오마라는 쿠바에 남아 밴드와의 공연이나 음반작업을 계속하였다. 사탕수수 수확기록을 세우기 위해 전국민이 들판으로 징집되어 일하는 동안 이들을 위해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으며, 몇몇 사회주의 국가와 프랑스 일본 등지에서 공연을 하기도 하였다. 오마라는 1995년 다른 음반작업으로 인해 쿠바에 왔었던 라이 쿠더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로부터 1년 후 오마라가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음반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던 에그램 스튜디오에 우연히 들렀을 때 쿠더는 즉석에서 그녀를 프로젝트에 포함시켰다. 쿠더는 볼레로 곡인 '베인테 아뇨스(Veinte Anos)'를 콤파이 세군도와 함께 불러달라고 오마라에게 요청하였고, 이 곡은 이 앨범의 하이라이트가 되었다. 그 후 오마라는 다음 앨범 [[Buena Vista Social Club presents Ibrahim Ferrer]]에도 참여하였고 이어서 그녀가 메인으로 참여한 세번째 앨범 [[Buena Vista Social Club Presents Omara Portuondo]]가 나왔다.
'쿠바의 에디뜨 피아프'라 불리 우기도 하는 오마라는 쿠바 음악계가 오랫동안 품어온 보석과도 같은 존재이다. 넓은 음역과 유연함을 갖춘 천부적인 목소리를 지닌 오마라는 손(son), 발라드(ballade), 볼레로(bolero), 구아라차(guaracha)에서 재즈에 이르는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특유의 음색과 표현력으로 능란하게 소화해낸다. 또한 청중들과 음악적인 교감을 나누는 데에도 뛰어나, 진솔하면서도 열정이 담긴 노래로 감동을 주곤 한다. 지금은 꽉짜인 스케줄로 세계 각국에서 공연하고 있지만 국보급의 보컬리스트로서 '트로피카나'를 비롯한 하바나 일대의 클럽에서도 정기적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오마라 포르투온도는 이제까지 고립되어온 카리브해의 작은 섬 쿠바에서 떠오른 세계적인 디바가 되었다.
‘나는 '부에나 비스타' 열풍이 생겼다는 사실에 대해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음악은 영혼을 풍요롭게 만들어주기 때문이지요. '부에나…’는 두 가지 면에 있어서 세계인의 감성을 사로잡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사랑'이고 다른 하나는 '행복'입니다. 사람들은 사랑과 행복을 느끼고 싶어하고, 쿠바의 음악이 바로 그것들을 가져다 준 것입니다.’

콤바이 세군도 : Compay Segundo 1907년 생 기타, 보컬
본명 Francisco Repilado 라는 본명을 가진 전설적인 인물은 쿠바의 산티아고 근교의 시보니에서 태어났다..
쿠바의 음악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는 1920년데 Tres와 클라리넷을 배우기 시작했고 이후 쿠바의 전통적인 son을 계승 발전하는데 헌신하였다.
이후 줄곧 쿠바의 유명한 아티스트들인 Sindo Garay, Nico Saquito, Miguel Matamaros, 와 Benny Mor 등과 활동을 하였다.
꼼빠이는 유명한 여러그룹들과 함께 연주 활동을 하였는데 특히El Conjunto Matamaros는 1939년 그가 클라리넷 주자로 가입하여 12년동안 함께한 그룹이다 이 그룹과의 활동이 꼼빠이 음악인생에 큰 부분을 차지 하고 있다
1942년 어느날 시보니에서 같이온 Lorenzo Hierrezuelo's 의 머리를 자르다 그들은 듀오를 결성하게 되고 이름을 Los Compadres라 칭하여 이후 13년 동안 꼼빠이가 이야기 하듯 그의 음악적 삶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들을 보낸다. 바로 이시기가 그의 별명 compay를 얻게 되는 시기인 것이다.
그는 쿠바의 tres와 스페니쉬 기타의 중간인 arm?ico 를 만든다.이는 기타의 3번째 현인 D가 두개인 7현의 기타로 꼼빠이는 이것으로 다양한 음악적 표현을 추구하였다.
꼼빠이는 1956년 그자신의 그룹 Compay Segundo y sus Muchachos을 결성하여 계속적으로 활동하게 되는데 멤버로는 기타의 Beniito Su?ez 리드보컬과 마라카스에 Hugo Garz, 꼼빠이이의 아들 Salvador Repilado 가 더블 베이스, 그리고 그가 백킹 보컬과 arm?ico를 맡아 활동하는데 오늘날 까지도 이 그룹은 쿠바의 전통 son 그룹들 중 가장 위대한 그룹의 하나로 꼽힌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최연장자(94세)이며 정신적인 지주라 할 수 있는 콤파이 세군도는 ‘내 나이는 겨우 아흔 살을 조금 넘었을 뿐’이라며 이제 곧 여섯 번째 아이를 낳을 거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다섯 살 때부터 할머니 담배에 불을 붙이기 시작한 이래 평생 골초로 살아왔다는 그는 연애와 여자야말로 인생의 꽃이라고 생각하는 만년 청춘이다.
전자악기의 전성기라서인지 요새 우리가 보는 가수들은 연주가 서툴고 노래도 잘 못한다. 화려한 옷과 분장, 춤으로 잠시 사람들의 주의를 돌리며 얼렁뚱땅 넘어갈 순 있지만 속인다는 것은 한계가 있어서, 결국은 듣는 사람을 기분 나쁘게 만들어버리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전 세계 사람들이 이 노인이 만들어낸 음악에 열광한다. 기분 좋은 음색으로 가장 편안하게 가슴에 와 닿는 리듬을 택할 줄 아는 본능 같은 것이 흐르기 때문이다. 애절하지만 끈적거리지 않고 또 놀랄 만큼 정확하다. 나이 어린 소년 소녀가 들려주는 혀 짧은 어리광으로는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인생을 충분히 느끼고 즐긴 사람들만이 보여주는 원숙함과 부드러움이 가득하다.

엘리아데스 오초아 : Eliades Ochoa 1946년 생 기타, 보컬

엘리아데스 오초아는 1946년 쿠바의 전원지역인 Songo La Maya에서 태어났다.
엘리아데스는 생계를 위해 쿠바의 산티아고에서 있는 바나 연회장을 다니며 11살부터 직업적인 연주생활을 시작했다.
키만한 기타를 가지고 연주하는 어린 엘리아데스는 사람들의 동정을 받기에 충분하였으며 사람들은 그런 오초아에게 구아라차를 연주를 청했고 이런 생활들로 인해 엘리아데스는 ‘El Cubanito’ (the little Cuban boy)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다.
1962년에 그는 라디오 방송국에서 쿠바의 컨트리 음악을 다루는 쇼를 제작방송하는 일을 하기도 했다.이후 1971년 그는 그일을 그만두고 Quinteto de la Trova 와 Septeto Tipico Oriental 와 함께 연주활동을 하게되고 이후 전설적인 그룹 Cuarteto Patria 에 가입하여 활동을 시작한다. 이들은 그들의 높은 명성에도 불구하고 그룹의 리더 Roberto Echeverria 가 그룹을 떠나는 1978년에나 첫 리코딩을 하게된다.
에리아데스 가세로, Cuarteto Patria는 연주활동 범위를 전셰계로 넓힐 수 있었다.또한 그들의 연주 쟝르도 그들의 전공이라 할수 있는 볼레로나 크리올라 뿐만 아니라 son montuno, guaracha 와 guajira에 이르기 까지 더욱 다양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쿠바에서 가장 뛰어난 기타리스트 가운데 한 사람이며, 스스로가 만들어낸 독특한 스타일의 음악을 9현 기타를 사용해 연주하고 있다. 1997년 엘리아데스는쿠바의최고 연주자들중의 한명으로 부에나 비스타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는데 바로 이것이 우리가 그를 알게된 계기이다.
'산티아고의 사자'라는 별명으로 불리웠던 엘리아데스 엘리아데스. 그러나 무엇보다도 브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에서 활화산 같은 기타 연주와 함게 포효하는 목소리로 'Chan Chan'을 부르던 모습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자료제공: 스플래쉬 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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